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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아들 2023. 1. 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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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품으로. 엄마랑아기랑, 샘터, 1978년 12월

자연의 품으로

박신영

 

  아이들과 막 점심을 먹고 밖에 나갔다 오는데 네 살짜리 큰애 재섭이가 "엄마 배고파"한다. 가게 앞을 지나다보니 뭔가 또 먹고 싶은 것이 있나 보다.

  조르는 애를 달래서 집에 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침에 배달온 우유 한 봉지와 복숭아가 한 개 있을 뿐이다. 복숭아 한 개로 형제가 나눠 먹자니 무척 감질나나 보다. 맛있게 먹는 애들을 보며 나는, 농사를 지으면 옥수수나 감자 따위는 실컷 먹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때 갑자기 재섭이가 "엄마, 우리 안동가자"한다. 안동에는 시댁이 있다. 시댁은 농사도 짓고 과수원도 있다. 동생 때문에 얼마동안 그 곳에 가 있었던 재섭이는 올 여름이 되면서부터 또 가고 싶어했고 워낙 조부모님께서 보고싶어 하셔서 한 달 동안 가있다 온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곳에 다녀온 뒤론 내내 안동 얘기이고 또 가자고 졸라댄다.

  "그래, 때를 봐서 한번 다녀오자"했더니 "아니야, 용섭이 데리고 가서 오지말자!"고 한다. "그럼, 집은 어떻게 하며 아빠 밥은 누가 해 주니?"하고 물으니 "집 팔면 되잖아, 아빠는 장난감 방에 있으면 되고"라고 대답한다.

  아빠를 위해 조그만 방 하나만 남겨놓고 다른 것은 모두 팔고 안동 가서 아주 살자는 뜻일게다.

  안동 시댁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아주 외딴 곳이다. 흙담집에 있는 것이라곤 넓은 들판, 논과 밭,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하늘같은 사랑, 그리고 오직 하나뿐인 문화기구 라디오 한 대가 있을 뿐이다. 사람살기 험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으는 그곳이 이다지도 재섭의 마음을 끈 것은 무엇일까.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 닭과 소, 염소, 돼지, 그리고 졸졸 흐르는 개울이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 재섭이는 정말 최고다. 정서적으로 만점이다.

  사탕, 아이스크림, 과자, 아무것도 없는 그곳이지만 어린 재섭이의 마음이 이다지도 그곳으로 치닫고 있다니!

  기계적인 도시 생활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재섭이 -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는 재섭이가 참으로 대견스럽고 예쁘다.

  그래 가자. 네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자. 그곳이 그렇게 좋은 곳일진대, 가서 네 소원대로 닭이며 돼지를 키우며 해바라기도 심자. 집은 지금처럼 깨끗하지 못하더라도 넓은 흙마당에서 생활을 일구며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자꾸나.

(엄마랑아기랑, 1978년 12월)

엄마랑아기랑, 샘터, 1978년 12월

집에 있는 여자

박신영

서울시 서초구 서초3 1478-12 개나리빌라 6 101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내나... 긴 한숨이 나온다. 그동안 잊은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만족하면서 살 줄 알았는데 참으로 오랫만에 또 이런 마음이 되고 만다.

겉에서 보기엔 잘 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집에서는 할 일이야 많다. 남편과 애들 둘 나가고 나면 어수선한 부엌 치워야 하고 방청소해야 하고 목욕탕에 쌓인 빨래거리 다 치우고 나면 때론 다림질에 터진 곳 꿰매기도 하고 운동화를 빨기도 한다. 가끔은 가방이나 우산을 수선할 때도 있고 반찬거리 사다 반찬도 해 놔야 되고 동사무소에 서류 떼러 갈 일도 생긴다. 뿐만아니라 은행에 가기도 하고 애들 학교 자모회에 나갈 일도 있다. 기타 자질구레한 모든 일이 나 없으면 안되고 하루만 빨래를 안해도 갈아 신을 양말이나 속옷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이 가사일이란 것이 분주하기도 하고 때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바쁠 것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도 주섬주섬 텅빈 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진력이 나기도 하고 돈이 넉넉해서 풍족하게 살 형편도 못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한없이 커다란 동공으로 다가오고 난 온 몸에 맥이 빠져 땅 속 깊이 가라앉는듯한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집에 있는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려고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하면서 악기도 연습해보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실업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남편이 푼푼이 주는 돈은 곧바로 아이들에게 건네주고 (중학생 들이다 보니 드는 돈이 많다) 그 나머지로 약간의 부식거리를 사고 나면 없다. 그래서 스스로 갓난아기 업고부터 안해 본 것없이 뛰어 보았지만 여자벌이가 너무도 보잘 것없고 그것도 가정있는 여자가 할 일이란 제한되어 있고 극심한 육체노동밖에 없으니 대학나온 여자로서 성취감같은 것은 못얻고 만다.

그래서 다시 집에 들어와 집안일만 다시 잘해보자하면 또 실업자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자유로운 듯하면서 자유롭지 못하고 일하면서도 일답지 않은 것이 집안일이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쓰다 보면 내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개설할 여유가 없다. 그러면서 또 나가서 벌어볼 용기를 못 내는 것은 지난 경험으로 보아 가정에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가족들 건강과 아이들의 품성, 성적에 지장이 있었다. 그러니 오늘도 집에서 하루를 잘 견뎌야 한다.

대학을 나왔으면서도 그것을 어디에 환원하거나 자기만족을 느낄 만큼 보람있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 그것은 나의 역부족인가 아니면 이 시대의 교육제도나 남성중심의 탓인가 생각해본다.

오늘도 하루를 바삐 움직여야만 식구들 오기 전에 일을 끝마칠 수 있을텐데 이렇게 맥없이 버릇처럼 신문의 구직난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 있는 여자

 

사랑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박신영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오빠와 같이 불렀던 노래가 생각나네요.

돌아오는 길에 옥천역에서 만난 환우 보호자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셨다고 했어요. 감동 어린 귀한 시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오빠가 노래시키면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라..."고 곧 잘 불렀었는데 우린 이미 50대 중반이 되어 저의 악기에 맞춰 오빠가 제 노래를 불렀네요.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든 생명 있으니 감사합니다.

이번 가족모임을 통해 환우들이나 보호자님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길 바랍니다. 수고해 주신 원장님 이하 전 직원 여러분, 봉사자들, 출연자들 모두모두 감사해요.

가족 중에 이런 환우 한사람 있으면 모두의 아픔이고 슬픔이겠지요 오빠의 경우 무려 38년 이상 이런 요양원 생활을 해 오고 있는 터에 다행히 "부활원"이라는 예수님 믿는 곳을 만나 정말 기뻐요. 오빠의 모습이 훨씬 밝고 단정하게 변해감을 알 수 있어요. 그런대로 생활하는데 별 불편 없는 듯 하고 여러 가지 재활 프로그램도 훌륭한 것 같아요.

아무쪼록 우리 모두 수치로 생각하거나 하지말고 좀더 따뜻하게 보듬어야 할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환우들이야 말로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천사요 보배인지도 모르겠어요. 부활원이 더욱더 사랑과 평안이 넘치는 천국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안녕

 

사랑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